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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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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동 지도

검단동(檢丹洞)

조선중기에 순흥안씨(順興安氏)와 우계이씨(羽溪李氏)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대구부 동중면(東中面)에 속했으며, 금호강과 팔공산을 조망하는 곳으로 압로정을 비롯한 많은 정자가 있었으며, 대구에서 팔공산으로 가는 나루터가 있었습니다.
삼한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검단토성(檢丹土城)이 있으며, 지금은 북쪽 구릉위의 성벽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고성동 지도

고성동(古城洞)

1975년 10월 1일에 이름을 지은 마을입니다. 옛날 대구의 토성(土城)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고성동' 이라고 하였습니다. 대구성은 1590년(선조 23)에 대구부사 윤현이 임금에게 아뢰어 쌓았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에 의하여 깨뜨려졌습니다. 1736년(영조12)에 경상도 관찰사 민응수가 다시 돌로 성을 쌓았습니다.
성은 1906년에 일본사람들에 의하여 허물어지고 도로로 바뀌었는데 오늘날 동성로·서성로·남성로·북성로가 그자리입니다.

관음동 지도

관음동(觀音洞)

약 500여 년 전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었던 마을이라 '관음동' 이라 합니다.

구암동 지도

구암동(鳩岩洞)

함지산 부근 숲속에 열매가 풍부해서 비둘기 떼들이 많이 모여 '구명동(鳩鳴洞)' 이라고 하였는데 비둘기 '구(鳩)자' 와 운암동(雲岩洞)의 바위 '암(岩)자' 를 따서 '구암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국우동 지도

국우동(國優洞)

도덕산에서 도남지를 거쳐 태전동에서 팔거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이 반포천(反哺川)인데, 국우동이라는 이름은 반포천(反哺川)에 흐르는 물이 인근의 들을 적시어 '국가의 살림을 넉넉하게 한다' 는 국우(國優)라는 뜻을 담은 다음과 같은 한시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도덕산 물이 반포천으로 흐르니 길러준 은혜같은 반포(反哺) 새와 같다네. 북쪽의 들을 적시니「나라 살림 넉넉해지고」 「나라 살림 넉넉하니」백성들 태평하네.

금호동 지도

금호동(琴湖洞)

옛날에는 문주마을이었으나 현재 태전교 남쪽부터 팔달동과 사수동까지 문주면(文朱面)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문주면, 팔거면, 퇴천면 3개면이 칠곡면(漆谷面)으로 합쳐질 때 금호강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금호동'이라고 불렀습니다.

노곡동 지도

노곡동(魯谷洞)

일명 '노로촌(魯谷洞)', '논어실'이라고도 합니다. 마을 뒤편에 함지산 중턱에 노곡산성, 일명 팔거산성이 있는데 노곡은 노노촌에서 유래된 말로 공자의 고향인 노(魯)나라에서 딴 것이라고 합니다.

노원동 지도

노원동(魯院洞)

1975년 10월 1일 서구 원대동에서 북구로 편입되면서 노곡동(魯谷洞)과 원대동(院岱洞)의 두 마을의 첫글자를 따서 '노원동' 이라고 하였습니다.
원대동 조선시대 교통로인 대로원(大櫓院)이라는 원이 있었던 곳입니다. 서거정 선생이 지은 '노원송객(櫓院送客)' 의 노원이 바로 대로원을 말합니다.

대현동 지도

대현동(大賢洞])

동구 신암동이 1975년 10월 1일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북구에 편입되었고, 동명을 새로이 정할 때 인근에 경북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점에 유의하여 큰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마을이라는 뜻으로 '대현동' 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크게 배우는 자가 많으면 현인이 많은 것(大學者多則賢人多耳)'이라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도남동 지도

도남동(道南洞)

도덕산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도남동'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동변동·서변동 지도

동변동(東邊洞)·서변동(西邊洞)

두 동네를 합쳐서 무태동이라고 합니다. 동화천을 중심으로 동쪽은 동변동, 서쪽은 서변동이라 합니다. 동화천은 팔공산에서 남쪽으로 흘러 무태지역을 통과하여 금호강으로 들어가는 내를 말합니다.
이곳 동변동 금호강 강변에 화담(花樺)이란 곳이 있습니다. 화담이란 '꽃밭소'라고도 하는데 금호강의 절벽을 따라 핀 꽃이 강물에 비추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기 때문에 붙인 이름입니다.

동천동 지도

동천동(東川洞)

팔거천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동천동'이라고 하였습니다.

동호동 지도

동호동(東湖洞)

마을의 서쪽에 팔거천이라는 하천이 흐르고 있어 그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호'라 한것으로 보이며 서리지라는 큰 못이 있습니다.

매천동 지도

매천동(梅川洞)

약 400여 년 전 야성 송씨(冶城 宋氏)가 현재의 태전교 남쪽에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로서 현재 매천1동은 매남(梅南)에게 매천2동은 송천(松川)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임진왜란때 의병활동을 한 송원기(宋遠器) 선생이 광해군의 폭정을 간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자 자신의 호를 벙어리라는 뜻에서 아헌(啞軒)으로 고치고 이 지역에 내려와서 후진양성을 하였다는데서 매남(梅南)마을이 유래되었고, 또한 마을 뒤쪽으로는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고 앞은 팔거천(八莒川)이 흐르고 있어 소나무 송(松)자와 팔거천(八莒川)의 천(川)자를 따서 송천(松川)마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들 자연부락을 하나의 동으로 합하게 되었는데 매남의 매(梅)자와 송천의 천(川)자를 따서 매천동이라고 이름을 정하였습니다.

무태동(無怠洞)

무태라는 말은 고려 태조 왕건의 고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경주로 가던중 이곳에 이르러 군사들이 야외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이때 왕건이 '경계를 서는 군사들에게 말하기를 태만히 하지말라(警軍日無怠)' 라고 한 말에서 무태라는 지명이 유래되었습니다.
왕건은 팔공산 동수에서 후백제의 견훤군을 맞아 싸웠으나 크게 패하였고, 신숭겸 장군이 왕건이 옷으로 바꿔 입고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복현동 지도

복현동(伏賢洞)

복현동은 이곳에 복현암이란 바위가 있는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복현암리라고 하였습니다. 복현암이란 어진 사람(賢者)이 숨어살던 바위라는 의미입니다.

사수동 지도

사수동(泗水洞)

사수(泗水)의 앞은 금호강의 맑은 물이 흐르고 뒤로는 명산이 병풍처럼 감싸 안아 배산임수의 아름다운 마을로 들 한가운데 섬뫼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수동은 3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안마을에는 동래 정씨, 순천 박씨, 창원 황씨가, 장기터에는 청주 한씨, 샛터에는 문화 류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던 곳이었습다.
사수는 유학과 관련이 있는 지명으로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가 태어나 살던 곳의 강 이름이 사수(泗水)인데, 이 강 이름을 따서 이곳을 ‘사수’라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중기 성주 출신의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1614년(광해군 6년) 이곳 사수동으로 이거하여, 사양정사(泗陽精舍)를 짓고 대구지역에 많은 제자를 교육하고 지역의 문인들과 교유하던 곳 입니다.

산격동 지도

산격동(山格洞)

산격의 한자는 원래 산격(山隔)이었는데 1910년에 산격(山格)으로 바뀌어 표기되었습니다. 산격의 원래 의미는 산이 가로 놓여 막혀있는 곳이란 의미입니다.
이 마을의 북쪽에 연암산이 있는데 금호강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산으로 막혀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입니다. 옛날에는 강이 주요 교통로 였습니다.

연경동 지도

연경동(硏經洞)

연경이란 말은 '경전을 연구한다'는 의미입니다. 퇴계 선생 제자인 이숙량과 전경창이 1563년(명종 18년)에 이곳에 서원을 짓고 이곳의 지명에 의거하여 연경서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서원은 조선시대의 학교로 연경서원은 대구 지역 최초의 서원입니다. 연경서원이 있었던 서쪽에 화암(畵岩)이라는 아름다운 바위가 있습니다.
한편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을 지날때 마을에서 글 읽은 소리가 들려 '연경'이라 하였다고 하기도 합니다.

읍내동 지도

읍내동(邑內洞)

1840년 칠곡도호부가 가산산성에 설치되었으나 산중이라 불편하여 후에 읍내동으로 이전하게 되었는데 칠곡 고을의 관아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읍내동'이라 합니다.

조야동 지도

조야동(助也洞)

뒷산의 모양이 함자와 같다고 해서 '함지산'이라고 하고 아랫마을은 '함지마을'이라고 하였습니다.
약 300여년전 민란과 흉년을 피해 김해김씨 상후공이 청도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했으며 그의 '문중간에 서로 도우며 살아라(門中爲助也)'라는 교훈에서 후손들이 동명을 '조야'라 하였다고도 합니다.

칠곡(漆谷)

신라 시대에는 팔거리(八居里)또는 북치장리(北恥長里) 또는 인리(仁里)라고 하다가 757년(경덕왕 16)에는 팔리(八里)로 개칭하여 수창군(壽昌郡)에 영속하였습니다. 고려 초에는 팔거(八居)로 고치고 현종 때에는 경산부(京山府)로 이속하였고, 조선시대에 와서도 성주모(星州牧)에 속하였는데 뒤에 팔거(八莒)로 칭하였으며, 별호로 칠곡(柒谷)이라고 하였습니다. 임진왜란후인 1640년(인조18) 군사전략적요충지으로 가산산성이 축성되고 칠곡도호부(七谷都護府)가 설치되면서 팔거현은 성주목의 속현에서 종3품관인 도호부사로 승격되었습니다. 칠곡(七谷)이란 이름은 팔거현의 명산 가산이 일명 칠봉산(七峰山)이로도 불리는데, 산정(山頂)에는 나직한 7개의 봉(峰)으로 둘러싸인 평정(平頂)을 이루고 골짜기도 사방 7개로 형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명칭을 따서 『七谷』이라고 했는데 구후 일곱 칠(七)자를 칠(柒)자로 바뀌어 『柒谷』으로 사용하다가 옻나무 (漆)로 고쳐 『漆谷』으로 다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옻나무가 많아서 옻칠(漆)자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산산성안에 설치된 칠곡도호부는 험준한 산속이라 불편하여 산성내에는 별장(別將)만두고 현재의 북구 읍내동으로 관아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1895년(고종32) 5월 26일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 실시에 따라 칠곡군(漆谷郡)으로 개편되어 대구부(大邱府)에 속하였고 1896년 8월 4일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慶尙北道)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칠곡군은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시 인동군(仁同郡)의 9개면과, 신라 때에 대목 또는 칠촌·곤산현이었던 약목면과 병합하고 군청 소재지를 읍내동에서 왜관(倭館)으로 옮겼습니다. 이때 팔거면(八莒面), 퇴천면(退川面), 문주면(文朱面)의 3개면이 칠곡면(漆谷面)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칠곡군은 1978년 2월 15일에는 인동면 일원이 구미시로 편입되고, 1980년 12월 1일로 칠곡면이 칠곡읍(漆谷邑)으로 승격되었습니다. 1981년 7월 1일 칠곡군 칠곡읍 전 지역이 대구시의 직할시 승격과 더불어 대구로 편입되고 우리 북구에 소속되었습니다.

칠성동 지도

칠성동(七星洞)

칠성동은 선사시대의 고인돌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곳에 고인돌 7개가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북두칠성을 닮아서 사람들이 칠성바위라고 불렀습니다. 칠성동은 칠성바위가 있는 곳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하여 이름 붙였습니다.
1924년에 발행된『대구읍지』에 의하면 1775년(정조 19)에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태영이 이바위에 일곱 아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합니다.

침산동 지도

침산동(砧山洞)

침산은 신천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는 들판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이런한 산을 독산(獨山)이라고 합니다. 독산이란 큰 산의 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산이 아니라 평지에 홀로 솟아 있는 산이라는 뜻입니다. 침산의 침(砧)자는 다듬잇돌 침자입니다.
1924년에 발행된 『대구읍지』의 기록을 유추해보면, 이 산의 모양이 다듬잇돌 같이 가로로 길쭉하게 생긴데서 이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곳에 여제단이 있었습니다. 침산동은 침산의 자락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입니다.

태전동 지도

태전동(太田洞)

태전동은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을 조정할 때 지당, 수평, 큰 이매, 작은 이매 등의 자연부락을 합쳐 형성되었습니다. 원래는 토지가 넓어 대전(大田)이었는데 후에 '태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팔달동 지도

팔달동(八達洞)

현재 구안국도 변에 위치한 자연마을로 지역의 명칭인 팔달을 취하여 '팔당동' 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칠곡지역의 옛명칭은 팔거(八莒)와 대구의 옛명칭인 달성(達城)을 연결하는 의미의 팔달(八達)에서 유래된 지명입니다.

학정동 지도

학정동(鶴亭洞)

학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학이 머문다' 는 뜻의 학정동(鶴停洞)이었으나 후에 학정동(鶴亭洞)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마을에 있는 산 이름이 '학익산(鶴翼山)'인 것을 보면 학과 관련이 있는 지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담당부서  : 총무과
  • 연락처  : 053-665-2224
  • 최종수정일  :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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