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지정번호 | 무형문화재 제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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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일 | 1996.5.27 |
기능보유자 | 김종문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북구 태전동 |
소개
직접 관련 문헌자료는 없으나 한국의 큰북(大鼓)은 우리나라의 신화(단군신화, 주몽신화), 전설(낙랑공주와 자명고)에서부터 등장하여 고대사회의 습속(부여의 영고(迎鼓)등)에도 이미 정착되어 있었던 한국 악기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악기(樂器)이자 또한 의기(儀器)로서 정악(正樂), 속악(俗樂)의 구분없이 사용되어 온 필수적인 악기이다.
김종문(金種文)은 17세 되는 해인 1941년에 대구 평리동에서 이원석(1924∼1956)에게 입문 하여 북제작 기능을 배웠고 1954년 1월 군에서 제대한 후, 현재까지 북의 제작을 가업으로 삼고있는 장인(匠人)이다.
김천출신의 이원석은 그 집안의 이수봉(1903∼1973)에게서 북의 제작과정을 이수(履修)하였으니, 이수봉⇒이원석⇒ 김종문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제작과정중 가죽가공은 생가죽을 소금쳐서 저장한 다음 40시간정도 물에 담구어 불린다음 탈모(脫毛) 작업을 거쳐 가죽을 목판 위에 놓고 두께를 맞추어 대패질하여 재단과 건조 등의 과정을 거치며, 북통은 목재를 제재한 뒤 건조, 통조각 맞추기, 북통세우기, 대패질, 칠 등을 거쳐 가공된 가죽을 통과 연결하고 단청(丹靑)을 한다.
북통에 쓰인는 재료는 오동, 육송 등이다.
김종문(金種文)은 17세 되는 해인 1941년에 대구 평리동에서 이원석(1924∼1956)에게 입문 하여 북제작 기능을 배웠고 1954년 1월 군에서 제대한 후, 현재까지 북의 제작을 가업으로 삼고있는 장인(匠人)이다.
김천출신의 이원석은 그 집안의 이수봉(1903∼1973)에게서 북의 제작과정을 이수(履修)하였으니, 이수봉⇒이원석⇒ 김종문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제작과정중 가죽가공은 생가죽을 소금쳐서 저장한 다음 40시간정도 물에 담구어 불린다음 탈모(脫毛) 작업을 거쳐 가죽을 목판 위에 놓고 두께를 맞추어 대패질하여 재단과 건조 등의 과정을 거치며, 북통은 목재를 제재한 뒤 건조, 통조각 맞추기, 북통세우기, 대패질, 칠 등을 거쳐 가공된 가죽을 통과 연결하고 단청(丹靑)을 한다.
북통에 쓰인는 재료는 오동, 육송 등이다.